노인 한 명 돌보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

초고령화로달려가는이시대의다양한문제를알기쉽게이해하고생각해보기위해다양한노년관련영화를통해이야기를풀어갑니다.[기자말] 큰사진보기 ▲ 영화 중 ⓒ (주)디스테이션, 싸이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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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요 내용이 포함돼 있을 수 있습니다.

독거 노인과 이웃의 불협화음

혼자 사는 노인 ‘오베(롤프 라스가드 분)’는 마을 이웃들과 사이가 좋지 않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거나 소음을 내는 것, 강아지가 용변을 함부로 보도록 놔두는 이웃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

반면 이웃들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오베를 고집불통 노인으로 취급하며 상대하지 않으려 한다. 마을주민과 오베 간의 팽팽한 대립관계는 이웃에 새로 이사 온 파르바네(바하르 파르스 분)에 의해 작은 균열을 맞는다.

파르바네는 오베에게 망설임도 없이 사다리를 빌려달라고 찾아가고 운전을 가르쳐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자신의 딸들을 돌봐달라 부탁하고 유기된 고양이를 키우라고 반강제로 밀어붙이기도 한다. 처음에는 귀찮다며 거절하던 오베도 파르바네의 거침없는 태도에 어쩔 수 없다는 듯 하나씩 부탁을 들어주기 시작한다. 영화 <오베라는 남자>는 혼자 사는 노인의 삶이 이웃들과의 관계로 인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영화다.

고령화, 그 중에서도 독거고령화

전 세계적으로 노인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전체 인구 중 노인 인구가 7% 이상을 차지하면 고령화 사회, 14%가 넘으면 고령 사회, 20%에 달하면 초고령 사회라고 하는데, 2023년 현재 우리나라는 노인 인구 비율이 18.4%로, ‘초고령 사회로 부지런히 달려가고 있는 고령 사회’라 불린다. 이렇게 수치를 마주하면 고령화에 대한 위기의식이 한층 더 가까이 다가온다.

이렇게 증가하는 노인 가구 중, 혼자 사는 1인 가구의 수가 가장 독보적이다.

‘2023년 고령자통계(통계청)’에 나타난 65세 이상 총 가구 수는 549만1000가구, 그중 1인 가구가 199만 가구에 달한다. 비율로는 36.3%를 차지하고 이 숫자는 앞으로도 꾸준히 증가할 것이다. 반면 노부부 혹은 1인 노인과 자녀로 이뤄진 전통적인 방식의 노인 가구는 독거노인가구에 비해 그 구성비가 상당히 낮아지고 있다.

사회가 핵가족화된 것은 벌써 오래된 일이고 모든 연령층에서 1인 가구가 늘어나는 현실이니 65세 이상 1인 가구의 증가가 이상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다른 연령대에 비해 노인들이 혼자 사는 경우 위험에 대한 대응 능력이 매우 취약하다는 것이 문제. 2020 보건복지부가 실행한 ‘노인실태조사 2020’에 따르면 65세 이상 가구 중 ‘건강이 나쁜 편’이라고 대답하거나 경제상태에 대해 ‘만족하지 않음’으로 답한, ‘우울증상이 있음’으로 응답한 1인 가구의 비율은 모두 노인부부가구나 자녀동반가구보다 높게 나타났다.

즉, 여러 방면의 생활 상태를 묻는 질문에서 독거노인 가구의 대답이 가족과 함께 거주하는 노인 가구의 대답보다 부정적인 경우가 많았다는 것인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자살 생각의 빈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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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집과 인간미 그 사이 어딘가

영화 속에서도 오베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시도를 한다. 누구에게도 친절하지 않은 오베가 매일 찾아가 다정하게 말을 거는 곳이 바로 아내의 묘소인데, 대답없는 아내에게 세상이 모두 이상하다며 투덜대고 어서 ‘당신 곁으로 가고 싶다’고 읊조리곤 한다.

결국, 회사에서의 해임과 함께 세상을 떠날 것을 결심한 그는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여러 시도를 한다. 그럴 때마다 그를 방해한 것은 언제나 이웃이었다. 고집불통 노인인 줄 알면서도 도움이 절실해서 무언가 부탁하러 오는 이웃들로 인해 계획한 일을 치르지 못하게 되자 짜증이 극에 달해 화를 내던 오베는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그들로 인해 자신의 쓸모를 재발견한다. 그로 인해 자존감을 되찾고 자살 시도도 하지 않게 되는 것.

오베는 어찌보면 매우 전형적인 인물이다. 현실에서도 많은 노인들이 젊은이들에게 ‘고집불통’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오랜 시간 살아오는 동안 지켜온 삶의 태도가 있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바로 이런 점이 혼자 사는 노인들을 더욱 고립시키는, 자발적인 아웃사이더로 만드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노인들에게도 마음 한 구석 따듯한 잔정이 남아있고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때, 아직도 자신의 ‘쓸모’가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 때 마음을 열게 된다. 이렇게 혼자 있는 노인에게 다가가 그의 마음을 열 수 있는 용기있고 과감한 이웃이 소소한 소통의 기회를 만들어 줄 수만 있다면 1인 가구 노인들도 충분히, 외로움을 극복하고 사회와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는 파르바네가 그런 역할을 한다. 마을을 깐깐하게 관리하는 오베의 역할을 인정해주고 오히려 도움을 청해서 그에게 해야 할 역할이 있음을 인식하게 해준다. 그동안 오베에게 절실했던 이웃의 모습인 것.

사회가 독거노인을 돌보는 방법

아파트와 같은 공동 주택이 위주인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풍경이 쉽지는 않다. 문을 닫고 나오지 않는 이웃의 집 문을 적극적으로 두드려 말을 걸기는 쉽지 않기 때문. 그래서 종종 집에서 혼자 숨을 거둔 노인들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발견되는 일이 일어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최근 한 지자체는 독거노인들에게 무상으로 요구르트를 제공하고 집 앞에 요구르트가 쌓이면 고독사를 의심해보는 방법을 생각해 냈는데 정책적인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방법이었다. 또한 부산시는 2018년부터 2022년까지 ‘고령자 대안가족 자활공동체 사업’을 실시했다. 1인 가구 노인들에게 지역사회 공동체 교육을 시키고 대안가족을 형성할 수 있도록 지원해서 이웃과 노인이 정서적 교감을 나누고 노인들 스스로 활기찬 생활을 모색하도록 돕는 사업이다. 또 소득활동, 건강관리와 여가, 취미 생활 등의 소모임을 만들고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도록 지원하기도 했다. 이 사업은 공적 복지서비스에 ‘대안가족’이라는 개념을 도입해서 지원한 적극적인 사례로 기록되었으나 2023년 이후 시행되지 못해 안타깝다.

‘아이 한 명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아무도 돌봐줄 이 없이 혼자가 된 노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듯하다. 자신이 사는 거주지 근처에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고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도움의 손길을 줄 수 있는 이웃과 함께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1인 가구 노인들이 죽는 날까지 안전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사회적인 안전장치가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플랫폼 얼룩소와 브런치에도 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