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굴욕, 대한민국은 왜 또 ‘거대한 실패’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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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투자 : 대한민국 29표 대 사우디 119표. 이 참담한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졌지만 잘 싸웠다고? 누가 뭘 어떻게 싸웠기에이런국제적인 망신을 당했는가. 사우디아라비아의 오일머니 탓에 졌다고? 이게 정말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대한민국 국민에게 할 말인가. 벌써 잊었는가.

1981년 9월 30일 독일 바덴바덴. 1988 하계 올림픽 유치도시를 결정하는 자리였다. 애초 불가능한 게임이었다. 아무런 대책 없이 무작정 유치전에 뛰어든 대한민국이 참패할 것이라는 게 당시 국제사회 상식이었다. 상대는 4년 전부터 올림픽 유치에 뛰어든 일본 나고야. 대한민국은 미국, 대만과 함께 3표를 얻을 거라는 관측까지 나왔다. 뚜껑이 열리자, 세계가 놀랐다. 유효표 79표 중 52표를 동아시아 분단국이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그 분단국은 30년 뒤 하나가 되어 평창 동계올림픽까지 개최, 세계를 감동시켰다. 대한민국 국민의 유전자에 승리와 성공의 기억이 새겨진 날이었다.

서울올림픽 유치의 추억을 잊었는가

1996년 5월 31일 스위스 취리히 국제축구연맹(FIFA) 집행위원회. 당시에도 경쟁국은 일본이었다. 결과는 아름다웠다. 득표전에서 앞섰던 대한민국의 양보로 2002년 월드컵을 한국/일본 공동 개최로 결정했다. 적어도 대한민국은 이런 나라였다. 2030 부산 엑스포(EXPO)는 하계, 동계올림픽과 월드컵에 이어 세계 3대 빅이벤트를 주최한 국가의 완성이 걸린 중대사였다. 우리가 올림픽이나, 월드컵 유치에 덜 연연하게 된 것은 이미 성취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한 단계 올라간 국격의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부산 엑스포는 다시 한 단계 도약할 기회였다. 그런데 정부는 과연 최선을 다했을까.

88올림픽이 한국전쟁의 궁핍한 이미지로만 기억되던 대한민국의 화려한 비상을 세계인의 뇌리에 심었다면, 월드컵은 그 이미지를 확장했다. 외교적으로도 거대한 성과였다. 88올림픽에선 1980 모스크바, 1984 LA 올림픽 당시 자유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각각 불참함으로써 양분됐던 세계를 하나로 묶었다. 노태우 정부의 야심찬 북방정책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월드컵은 어떤가. 앙숙이었던 한국과 일본이 화합하는 모습을 세계에 내보였다.

그러나 너무도 버거운 싸움이었기에 정부와 민간이 혼신의 노력을 다하면서도 진중했다. 적어도 이번처럼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글로벌 이벤트를 유치하면 타산을 앞세우며 주판알부터 튕기지만, 그보다 더 큰 유·무형의 선물을 안긴다. 88올림픽 유치 성공에는 글로벌 사우스(개도국들)의 마음을 움직인 게 주효했다. 대체 부산 엑스포 유치전에선 무엇을 움직였나 궁금할 따름이다. 대통령 이하 정부는 말부터 앞세웠다. 아니, 말만 앞세웠다. 언제부턴가 '윤비어천가'의 국가기록물 저장고가 된 대통령실 브리핑을 들여다보자.

대통령은 지난 23일 프랑스 파리 인터콘티넨털 호텔에서 열린 국제박람회기구(BIE) 대표 초청 만찬에서 테이블을 일일이 다니며 지지를 호소했다, 고 한다. 한명 한명과 개별적으로 사진을 찍고 감사를 표했다. 다음 날 점심에는 인근의 인터콘티넨털 르그랑 호텔에서 각국의 BIE 대표들을 초청, 밥을 샀다. 지난 9월 25일에는 유엔총회 참석차 방문한 뉴욕 체류 4박 6일 동안 47개국 정상을 만나 부산 엑스포 지지를 당부했다. 7박 8일 간 샌프란시스코-런던-파리 방문을 마치고 연 28일 국무회의의 긴 모두 발언에서는 "(지난 1년 반 동안) 저 자신도 150개 이상 국가 정상들과 일일이 양자 접촉하면서 지지를 호소했다"고 자화자찬했다. (나라 수는 29일 대국민담화에서 54개국이 줄었다. "96개국 정상과 한 150여 차례 만났다"고 정정했다. )

악수 한 번하고 밥 한 끼 사는 게 유치활동?

접근 방식부터 잘못됐다. 세계 박람회는 올림픽과 월드컵이 선사했던 '상징'에 더해 실리가 큰 이벤트다. 관련 연구기관들은 경제 유발 효과를 61조 원으로 전망했다. 정말 중요한 이벤트로 생각했다면, 철저하게 거래 방식으로 가야했다. 사우디의 오일머니 핑계를 대는 것은 구차하다. 지금이 1970년 대인가? 대한민국 경제력과 브랜드 파워는 사우디를 넘어선 지 오래다. 이러한 행사 유치를 도와달라는 건 대통령이 각국 정상과 악수 한 번 하고, BIE 대표들에게 밥 한 끼 산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 대통령 부부가 잦은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 어떤 걸 주고받았는지, 아니 거래 자체를 하려고 했는지조차 의심된다. 무슨 '1호 영업사원'이 거래는 안 하고, 사진 찍는 데만 정성을 기울이나. 대내외 메시지는 더 문제였다.

대통령은 70여 년 전 전쟁과 분단, 빈곤으로 어려웠던 대한민국의 기억을 소환했다. 대한민국이 이미 35년 전 뛰어넘은 한국전쟁의 이미지를 뒤늦게 팔았다. 지난 1월 18일 스위스 다보스 포럼 '한국의 밤' 행사 모두 발언에서부터 지난 24일 파리 BIE 대표 초청 오찬사에까지 예외 없이 이어진 메시지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전쟁의 폐허에서 기적적인 성장과 발전을 이뤄낸 대한민국은…"이라는 과거지향적 사고가 과연 국제사회에 먹힐 것으로 생각했는지 묻고싶다. 국내에서 '반공 전체주의 세력'과의 싸움을 강조하던 퇴행적 사고의 연장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밖에서도 샜다.

지난여름 세계 4만여 명의 청소년들을 질척한 간척지의 모기떼 속으로 내몬 새만금 잼버리의 '거대한 실패'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대한민국이 지난 세기부터 쌓아온 국가이미지를 온통 흔들었다. 미증유의 실패가 1년 새 잇달아 벌어졌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습관적으로 전 정부 탓을 하는 모습은 실망을 더한다.

'졌, 잘, 싸' 준비된 변명은 국민모독

'1호 영업사원'이 이상한 국가홍보를 해 온 유치 기간 대한민국은 단순히 출장비만 지불한 게 아니다. 문화자산, 외교 자산, 경제 외교 자산을 한꺼번에 탕진했다. 돈과 돈이 오가는 엑스포 유치 홍보에 동원한 BTS는 우습게 됐고, '세속의 교황'이라 불리는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반기문이라는 외교자산도 꼴이 말이 아니게 됐다. 최태원 상공회의소 의장을 필두로 SK와 삼성, 현대, LG 등 12개 대기업이 BIE 회원국을 분담해 세계를 누빈 재계 역시 각각의 브랜드 파워에 먹칠을 하게 됐다. 애당초 국가적 명운을 걸고 나섰어야 할 싸움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참패하자마자준비해 놓았다는 듯이 "졌, 잘, 싸"를 이구동성으로 외치는 모습은 가관이다. 징비록을 써야할 시간이다. 또 하나의 '거대한 실패'였다.